산업의 에너지 효율을 이야기할 때 예전에는 주로 모터, 보일러, 폐열 회수, 단열 같은 주제가 먼저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흐름 속에서 산업용 저온열 전기화가 새로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IEA는 2025년 산업 효율 분석에서 산업 에너지 수요의 큰 부분이 열 생산에 쓰이고, 그중 상당량이 200°C 이하의 저온 영역에 있어 히트펌프 같은 기존 기술로 전기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IEA 전망에서는 산업 공정열에서 전기의 비중이 **2024년 4%에서 2030년 12%**로 높아질 것으로 보는데, 이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비에너지집약 산업의 저온열 전기화와 산업용 히트펌프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저온열 전기화는 단순한 연료 교체가 아니라, 산업 효율 혁신의 다음 단계로 읽히기 시작했다.
왜 하필 ‘저온열’이 먼저 주목받을까
이유는 기술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구간이기 때문이다. IEA는 식품가공, 섬유, 기계 제조 같은 **덜 에너지집약적인 산업이 전체 산업 에너지 사용의 약 30%**를 차지하며, 이들 산업의 열수요 가운데 약 75%가 200°C 이하라고 설명한다. 또 별도의 기술 보고서에서는 저온 열과 증기 공정에 주로 의존하는 폭넓은 산업군이 **세계 산업 에너지 소비의 약 70%**를 차지한다고 본다. 반대로 고온 열이 필요한 에너지집약 산업은 여전히 전기화가 더 어렵다. 다시 말해 산업 탈탄소와 효율 향상에서 가장 먼저 손댈 수 있는 넓은 영역이 바로 저온열 쪽이라는 뜻이다.
왜 이것이 단순한 전기 전환이 아니라 ‘효율 혁신’일까
핵심은 열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열을 다루는 효율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IEA는 산업용 히트펌프가 현재 90~140°C 범위의 공정에 이미 현실적인 선택지이며, 대형 산업용 히트펌프는 150°C까지의 열 공급에 잘 확립돼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전기보일러는 350°C의 증기와 약 70bar 압력까지 제공할 수 있다. 즉 저온열 전기화는 “가스를 전기로 바꾼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화석연료 기반 열공정을 더 높은 효율의 장비와 공정 제어로 다시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IEA가 이를 산업 효율 개선의 중요한 레버로 따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 점은 에너지 절감 논리와도 직접 연결된다. IEA는 저온열 전기화가 효과를 내려면 먼저 폐열 회수, 단열 강화, 공정 제어 개선, 공장 단위 열 최적화 같은 기본 효율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조치들은 연료 소비를 바로 줄일 뿐 아니라, 이후에 필요한 전기화 설비 규모도 더 작고 저렴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저온열 전기화는 기존 효율 향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효율 개선 위에 얹히는 2단계 혁신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를 “다음 효율 혁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왜 전력시장과 연결되는 시스템 혁신으로도 보일까
산업용 저온열 전기화는 공장 안의 설비 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IEA는 산업 열의 전기화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맞물리면서 산업 탈탄소, 시스템 유연성, 에너지 안보를 함께 밀어주는 경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저온열은 태양광과 풍력이 많은 시간대의 전기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시장 입장에서는 단순한 신규 수요가 아니라 유연하게 조절 가능한 수요가 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이 주제는 산업 효율 보고서와 재생에너지·전력시장 보고서에서 동시에 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보조 기술이 열저장(thermal storage) 이다. IEA는 열저장이 변동성 재생전기와 연속적인 산업 열수요를 이어 주는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또 열저장 시스템은 모래, 시멘트, 벽돌 같은 비교적 단순한 재료로 만들 수 있고, 1,000°C까지 열을 저장할 수 있으며, 비용도 kWh당 15~20달러 수준으로 화학 배터리보다 훨씬 낮고 핵심광물 공급망 의존도도 적다고 본다. 이 말은 곧 저온열 전기화가 히트펌프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열·저장·운영 최적화가 묶인 시스템 혁신이라는 뜻이다.
왜 에너지 안보와 경쟁력 이야기까지 함께 따라붙을까
산업은 연료 가격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IEA는 저온 산업 열의 전기화가 화석연료 가격 변동성에 대한 노출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한다. 유럽연합 사례만 봐도, IEA는 히트펌프와 전기보일러를 활용한 산업 열 전기화가 기술적으로 산업 화석연료 사용을 거의 3,000PJ, 직접적인 천연가스 사용을 연간 35bcm 줄일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중국도 비슷한 방향으로, 산업 화석연료 사용을 거의 9,000PJ, 직접 천연가스를 48bcm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저온열 전기화는 탄소감축뿐 아니라, 수입연료 의존과 연료가격 충격을 줄이는 산업 안보 전략이기도 하다.
경제성도 완전히 비현실적인 단계는 아니다. IEA는 산업용 히트펌프가 여러 EU 회원국에서 기존 가스보일러와 비교해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전기보일러는 효율이 더 낮아서 일반적으로 더 비싸지만, 전력가격 조건이 좋은 북유럽 등에서는 이미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저온열 전기화는 “언젠가 가능할 미래 기술”이라기보다, 시장 조건이 맞는 곳부터 이미 경쟁이 시작된 기술에 더 가깝다.
그런데 왜 아직 대규모 확산은 더딜까
답은 기술보다 시장 조건에 있다. IEA는 산업용 히트펌프와 전기보일러가 상용 기술임에도 확산이 더딘 이유로, 불리한 전기-가스 가격비, 긴 그리드 접속 대기시간, 그리고 분명하지 않은 정책 프레임워크를 꼽는다. 다시 말해 장비가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쓰는 쪽이 여전히 가격과 제도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IEA는 정부가 설치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산업 열기술 기준을 만들고, 동적 전기요금 접근성을 넓혀 저수요 시간대 사용을 유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 점 때문에 산업용 저온열 전기화는 “기술 혁신”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장 설계 혁신에 더 가깝게 보일 때가 많다. 장비 자체는 이미 상당 부분 준비돼 있지만, 전기요금 구조, 접속 속도, 투자 인센티브, 공장 운영 방식이 아직 화석연료 시대의 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분야의 성패는 더 뛰어난 기계를 하나 더 만드는 일보다, 기존 공장이 전기로 움직이는 열 시스템을 경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에 달려 있다.
정리하면 왜 ‘다음 효율 혁신’일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산업용 저온열 전기화는 이미 상용화된 기술로 큰 비중의 산업 열수요를 더 적은 에너지와 더 적은 화석연료로 공급할 수 있고, 여기에 열저장과 재생전기까지 연결해 공장 효율과 전력시스템 유연성을 함께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다음 효율 혁신’으로 불린다. 초고온 공정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고, 공정 최적화·폐열 회수·단열 개선과 결합할수록 효과가 커지며, 에너지 안보와 탄소감축까지 동시에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이 이 기술의 강점이다. 결국 산업 효율의 다음 장은 모터와 단열을 넘어, 열을 전기로 더 똑똑하게 다루는 공장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