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력시장에서는 “낮에는 전기가 남아돌고 저녁에는 오히려 부족해진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태양광 비중이 커진 전력시스템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구조를 설명한다. ACER는 2025년 유럽 전력시장 분석에서 한낮의 태양광 과잉공급과 저녁 수요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짚었고, IEA도 태양광·풍력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는 공급이 전력망 수요를 초과할 수 있는 “과잉 시간대”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IEA는 2025년 세계 전력 수요가 전년 대비 3% 증가했고, 2026~2030년에는 연평균 **3.6%**의 빠른 증가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즉 지금의 문제는 전기가 전혀 없어서라기보다, 전기가 필요한 시간과 전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이 점점 더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총전력보다 ‘시간대 불일치’가 더 큰 문제가 될까
전력은 저장 없이도 쓸 수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까다롭다. 전력시스템은 하루 전체로 평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맞춰야 한다. 그래서 낮에 전기가 많이 남았다고 해서 그 전기가 자동으로 저녁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ISO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순부하(net load)”라는 개념을 쓰는데, 이는 전체 수요에서 태양광·풍력 같은 변동성 전원의 출력을 뺀 값이다. 그리고 어떤 계절에는 이 순부하 곡선이 한낮에 깊게 꺼졌다가 저녁에 급하게 치솟아, 마치 오리처럼 보이는 이른바 덕 커브(duck curve) 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핵심은 전기가 부족한지 아닌지를 “하루 총량”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같은 날이라도 정오에는 태양광이 넘쳐서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 있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전기를 더 많이, 더 빨리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전력시장에서는 총 발전량만큼이나 몇 시에 얼마를 보낼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 왜 어떤 날은 낮에 전기값이 거의 0이 되거나 음수까지 떨어지는데, 같은 날 저녁에는 계통 운영이 갑자기 팽팽해지는지 설명할 수 있다.
낮에는 왜 전기가 남는 것처럼 보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태양광의 출력 패턴이 수요 패턴과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이다. EIA는 태양광이 낮 시간에만 생산되고 정오 무렵 가장 강해지며 해질 무렵 빠르게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태양광 설비가 많아질수록 한낮에는 기존 발전기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그 결과 덕 커브의 “배 부분”이 더 깊어진다. 캘리포니아 사례에서 EIA는 5월과 6월 한낮 기준 태양광 출력이 2020년 10.2GW에서 2025년 18.8GW로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 수요가 아주 높지 않은 시간대에 전기가 남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이때 전력망이 그 전기를 다 흡수하지 못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는 출력제한(curtailment) 이고, 다른 하나는 음전력가격이다. IEA는 2025년 보고서에서 음전력가격은 기술적·규제적·계약적 이유로 시스템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며, 특히 수요가 낮고 발전이 많은 시간대에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5년 프랑스·독일·네덜란드·스페인 같은 유럽 시장에서는 음전력가격 시간이 약 **6%**까지 올라갔다. 즉 낮에 전기가 남는다는 말은 “전기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간에 쓸 수 있는 수요·저장·송전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에 가깝다.
저녁에는 왜 다시 부족해질까
문제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낮 동안 전기를 많이 만들던 태양광은 빠르게 줄어드는데, 사람들의 전기 사용은 오히려 그때부터 다시 늘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EIA는 덕 커브의 핵심 도전으로, 에너지 수요는 여전히 높은데 태양광 출력은 떨어지는 오후 늦게부터 저녁까지 기존 발전기가 매우 빠르게 출력을 올려야 한다는 점을 든다. 다시 말해 저녁의 “부족”은 꼭 하루 전체 발전량이 모자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큰 폭의 순부하 증가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 구조에서는 같은 발전량이라도 가치가 달라진다. 정오의 전기 1MWh와 저녁 7시의 전기 1MWh는 계통에 주는 의미가 다르다. 정오에는 이미 태양광이 많이 나와 있어 추가 전기의 가치가 낮아질 수 있지만, 저녁에는 태양광이 줄어든 상태에서 냉방, 조명, 상업 활동, 가정용 수요가 겹치며 전기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래서 “낮에는 남고 저녁에는 부족하다”는 말은 공급의 총량 문제가 아니라, 시간대별 가치와 유연성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왜 앞으로 이 구조가 더 자주 나타날 가능성이 클까
앞으로는 이 문제가 더 자주,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IEA는 2026~2030년 세계 전력 수요가 연평균 3.6% 증가할 것으로 보고, 그 배경으로 산업, 전기차, 냉방, 데이터센터를 꼽는다. 특히 IEA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처럼 더운 지역에서 에어컨 확산이 연간 소비뿐 아니라 피크부하까지 키울 것이라고 본다. 또 다른 IEA 분석에서는 전 세계 주거용 에어컨이 피크전력에 약 600GW를 기여하지만, 이 부문의 유연한 수요반응 활용은 아직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즉 한낮 태양광은 계속 늘어나는데, 저녁 피크를 만드는 냉방·전기차·새로운 전력수요도 함께 늘어나고 있어 시간대 불일치가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유럽 시장은 이 변화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 ACER는 한낮의 태양광 과잉공급과 저녁 수요의 간격이 커지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지적했고, 이 격차를 관리하려면 수요반응, 배터리, 국가 간 연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단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태양광 비중이 높아지는 어느 시장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전환기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해법의 핵심은 “낮의 남는 전기”를 “저녁의 필요한 전기”로 옮기는 것이다. IEA는 배터리 저장장치를 가장 다재다능한 단기 유연성 수단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면서, 배터리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수요가 높은 시간대로 이동시키고, 일부 송전망 증설 필요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2024년 전 세계 유틸리티 규모 배터리 추가 설치는 63GW, 누적 설치는 124GW까지 늘었고, 배터리 프로젝트 비용은 같은 해 약 40% 하락해 150달러/kWh 수준이 됐다. 이는 “낮에 남고 저녁에 부족한 구조”를 다루는 도구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캘리포니아는 이 변화가 실제 운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보여준다. EIA에 따르면 오후 5시~9시 저녁 피크 시간에, 낮의 잉여 태양광으로 충전된 배터리의 방전량은 2022년 5~6월 평균 1GW 미만에서 2025년에는 4.9GW까지 올라갔다. 그 결과 이 시간대 천연가스 발전을 일부 대체할 수 있었다. 즉 문제의 구조가 “낮엔 남고 저녁엔 부족하다”라면, 배터리는 그 사이를 메우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다.
배터리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IEA는 수요반응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소비자가 가격 신호나 계통 신호에 맞춰 전력 사용을 조금 늦추거나 옮기면 피크 설비 필요량과 재생에너지 통합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전 세계에서 실제 활용되는 수요반응은 약 100GW에 그쳤다. ACER도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요반응, 배터리, 국가 간 전력 연계가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해법은 발전소를 더 많이 짓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 쓰고 언제 저장하고 언제 옮길지를 더 똑똑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왜 이런 구조가 생길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낮에는 태양광이 많이 나와 전기가 남는 것처럼 보이고, 저녁에는 태양광이 급감하는데 수요는 여전히 높아 순부하가 빠르게 치솟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생긴다. 다시 말해 문제의 본질은 총발전량 부족보다 시간대 불일치와 유연성 부족이다. 그래서 앞으로 전력시장의 핵심은 전기를 더 많이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낮의 잉여 전기를 저녁으로 옮기고, 수요를 더 유연하게 움직이며, 전력망이 그 흐름을 받아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